여기 살아있는 날들을 위하여
김민영 큐레이터
일우 스페이스는 김승구의 개인전 《여기 살아있는 날들을 위하여 : About This Life》를 개최한다. 김승구는 한국사회의 모순이 빚어낸 이질적인 요소들이 카메라 프레임 안에서 균형을 이루는 찰나의 순간을 담아왔다. 그 중. 도시 주변의 집단적 여가를 즐기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촬영한 <Better Days>는 급격한 경제발전 이면에 자리한 한국의 얇은 문화 정체성과 도시 이미지에서 비롯된 불협화음의 미감을 포착한 작가의 대표작이다. 도심과 변두리에서 목격된 키치 감성은 신자유주의와 글로벌 자본주의의 염세적 측면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그러나 삼라한 객체들에 초점을 맞춰 보면 매끈한 화면 너머의 숨과 삶이 감각된다. 본 전시는 인간에 대한 김승구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과 관계 지향적 시각을 주목하고자 기획되었다.
〈Better Days>는 변두리의 출처 모를 혼성모방의 조형물 혹은 인공 자연을 촬영한 풍경 사진과 그 풍경 안에 익명의 인간들이 등장하는 군중 사진 등 크게 두 부류로 전개된다. 전자의 경우, 기존 맥락에서 이탈한 요소들이 뒤엉켜 익숙하면서도 기이한 느낌을 전유한다. 대중의 취향을 저격하기 위해 '좋은 것'을 긁어모았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진품이 아닌 가짜, 혹은 환영의 장면이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 한국식 토속 정서가 덧입혀져서 풍경은 원래 의도에서 더욱 굴절된다. 유럽의 성 이미지를 벽지로 바른 전통 음식점과 인공폭포를 조경으로 설치한 갈비집은 이상향에 도달하고 싶은 욕망과 그것을 어떠한 성찰 없이 모방한 조급함이 만들어낸 하이브리드 이미지다. 작가는 혼성모방 태도를 비판하고자 싸구려 장면을 수집한 게 아니다. 다만, 그 정경을 통해 동시대 우리의 삶 자체를 유비하고자 한다. 김승구의 풍경은 나와 당신이 발 딛고 사는 현실의 공간이다. 촌스럽지만 편안하며 때때로 행복감을 주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은 온화한 언어로 풀어낸 시대의 증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인공 자연에서 여가생활을 즐기는 군중의 이미지는 일상적 화면임에도 인간과 배경의 상충하는 분위기로 인해 화면에 생경함이 흐른다. 지평선을 기준으로 하여 화면 상단부가 건축물과 희뿌연 대기의 무미건조함으로 장악된 반면, 하단부는 살아있는 존재들이 내뿜는 생동의 빛으로 만연하다. 이 대조는 고도 압축 성장 국가의 탈 맥락화된 도시 건설을 보여주며 멜랑꼴리를 유발하는 동시에, 너무나 친숙한 장면이기에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 일반적으로 거대한 군중 사진은 공간과 구조 안에서 통일된 모습으로 자리하기에 사회적 패러다임에 의해 통제되는 현대사회의 슬픈 초상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김승구의 군중 사진은 그로부터 비껴간다. 한강 고수부지의 좁은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인파와 도시 한 켠에 마련된 꽃 축제에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는 움직임은 콘크리트 정글의 삶 속에서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온전히 독립되어 있지 않으며 서로의 삶에 연루되어 있음을. 김승구는 인간을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타자와의 상호 엮임 속에서 읽으며 이를 사진 매체로 가시화한다.
전시명 《여기 살아있는 날들을 위하여 : About This Life》는 베리 로페즈의 에세이 제목을 차용했다. 해당 저서에서는 인간을 주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고찰하며, 더 넓은 인식을 직조해 나간다. 김승구의 사진은 개인과 전체, 인간과 환경, 주류와 비주류 등 상반된 개념이 뒤섞인 순간을 포착하여 인간을 진동하는 세계에 위치시킨다는 점에서 앞선 책과 유사한 태도를 견지한다. 그렇다면 왜 공동이라는 세계, 공동이라는 감각이 필요한 걸까. 그것은 우리가 현재 상실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의 삶은 팬데믹으로 인해 전 지구적이고 불평등한 위기를 맞이했으며, 이것은 존재의 고립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김승구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객체들의 교차 순간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순간은 작가의 응시와 엮어지고, 이후 물질로 프린트된 사진은 다시 관객의 응시와 교차하며 고착된 세계의 균열을 이끈다. 결국, 세상을 향한 중첩된 사유는 좀 더 다정한 내일을 향한 초석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연결은 그 자체로 치유적이다. 김승구의 개인전 《여기 살아있는 날들을 위하여 : About This Life》를 통해 도시의 스펙터클에 가려진 우리들을 발견해 보고, 자아와 세계의 경계를 진동시켜보길 희망한다.
